디자인에 자연을 더하다 - 아르누보 유겐트스틸, 그리고 앙리 반 데 벨데


이전에 포스팅으로 다루었던 아르데코는 고전적인 화려함 속에서 현대 스타일을 점차적으로 반영해나갔다. 그 덕에 꽤 오랜 기간 동안 인기를 끌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은 이러한 양식의 시작점이다. 정확히는 이전에 유행했던 양식에서 어떠한 점이 변형되어 아르데코까지 이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점을 알기 위해서 오늘은 아르데코 이전에 유행했던 '아르누보'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넓은 영역에서 유행하며 많은 이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던 이 디자인은, 어떤 형태를 지녔던 것일까?

한 때 많은 인기를 누렸던 아르누보는 여러 분류로 나뉘기도 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유겐트스틸' 디자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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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Art Nouveau), 그리고 유겐트스틸(Jugend Stil)


ⓒ 아르누보 스타일, nevacrossfit


서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까지 비교적 넓게 퍼진 장식적 양식인 아르누보는 1880년부터 약 20년 정도 유행했는데, 건축, 패션 및 그래픽 디자인에서 독특한 성질이 두드러졌다. 이 양식은 인상주의가 영향을 미쳐, 비교적 환하고 연한 파스텔 계열의 부드러운 색조를 주로 사용했다. 또한, 복잡한 색채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섬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용이했다.


이처럼 아르누보는 '새로운(nouveau) 예술(art)'이라는 의미를 담은 단어로, 실제 인테리어 디자인 모습을 보아도 작은 공간까지 섬세하게 디자인한 모습이 눈에 띈다. 특히 자연적인 곡선 형태를 자주 이용한 덕분에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다.


ⓒ 독일 잡지 '유겐트(Jugend)' 표지


아르누보는 각 국가마다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 독일에서는 유겐트 스틸, 이탈리아에서는 스틸 리버티, 바르셀로나 중심의 스페인에서는 아르테 호벤, 오스트리아에서는 시세션, 영국과 미국에서는 모던스타일 등으로 불려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유겐트스틸(Jugend Stil)'은 독일식 아르누보를 뜻한다. 독일의 한 잡지 이름인 '유겐트(Jugend)'에서 유래되었으며, 청춘 양식, 젊은 스타일이라는 뜻을 지녔다. 아르누보 이전의 양식은 번잡한 모양을 피하기 위해 단적이고, 간결한 모습을 주로 비추어 대다수가 변화를 시도할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래서 주창자들은 장식 요소의 원리에 '식물'을 적용하여 동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형식을 이루어낸 것이다. 적용시킨 대상 또한 무궁무진하다. 간단한 가구, 가전제품, 조명 등의 장식품부터 보석, 유리 디자인, 큰 벽면 모자이크, 그리고 건축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실로 광범위했다. 특히 인테리어와 건축에서는 지역적인 특성이 돋보였고, 형태 또한 상당히 근대적인 모습을 취했다.


ⓒ 유겐트스틸 양식 건물, doopedia


이러한 디자인 스타일은 유럽 각국에서 아르누보라는 베이스를 가진 채 화가, 삽화가, 보석 공예가, 건축가, 유리 공예가, 디자이너 등 분야와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점차적으로 퍼져 나갔다. 더불어 각자 갖고 있는 독창적인 스타일이 아르누보와 결합되어 더욱 다양한 스타일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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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와 같은 듯 다른, 형태의 특징


ⓒ 아르누보 양식 가구, nevacrossfit


유겐트스틸은 독일과 스코틀랜드의 지방색이 담겼으며, 이로 인해 간결하고 근대적인 느낌이 들게끔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식물의 꽃과 잎에서 볼 수 있는 율동감 넘치는 곡선 형태 등을 주로 사용하며 추상적인 형식을 조화롭게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양식화된 곡선, 평면, 물결, 비대칭 모양, 장식적 패턴을 볼 수 있다. 상업적인 방식에서 멀어지면서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다는 뜻을 담았다.


ⓒ 아르누보 양식 가구, nevacrossfit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이 양식은 1900년대 전후로 구분되는데, 1900년 이전의 초기에 생산된 디자인은 자연스러운 재현적 형태의 꽃무늬를 강조하고 있다. 영국의 미술공예운동과 유사하다는 평이 대부분이었으며, 민속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점점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이면서 양식화되어, 아르누보의 전형적인 스타일과 차별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시기가 나누어진 데는 반 데 벨데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누보 속 독보적인 행보,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


ⓒ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


벨기에 출신의 아르누보 양식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그는 빅토르 오르타와 함께 아르누보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벨기에보다 독일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펼치며 20세기 초 독일의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먼 훗날에는 바우하우스로 통합되는 그랜듀칼 예술공예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 파리 상점, sharing guy's journey

사무엘 빙의 파리 상점 '라 메종드 아르누보 (La Maison De Art Nouveau)'에서도 아르누보가 자리를 잡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곳은 1870년부터 가구, 유리 공예, 보석, 스테인드글라스, 포스터, 디자인 등 제품 판매와 모임 장소로 사용한 곳이다. 사무엘 빙은 1896년 파리에 개장한 이 곳의 인테리어를 반 데 벨데에게 의뢰했는데, 벨데의 곡선을 사용한 장식은 신선하고 특징적인 스타일로 여겨져 인기를 누렸다. 덕분에 신예술이라는 뜻을 가미하여 하나의 양식으로 널리 알려지며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직선과 곡선을 사용하되, 물체가 가진 구조적인 로직을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는 입장을 주장했다. 강하게 추상화된 현상과 기능에 치중하여 장식을 했으며, 미술의 기본이 인력과 반력의 과학적 법칙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펼친 것이다. 덕분에 그의 가구는 아르누보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이면서도 구조주의적인 특성을 보이게 했다. 적절히 차별점을 선보였기에 독일에서 성공적인 활동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다.


아래는 그가 디자인한 가구 및 장식품의 모습이다.


ⓒ art.nouveau.world

ⓒ Master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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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술에 한 획을 그었던 아르누보


독일에서 디자이너와 건축가 중심으로 독일공작연맹이 설립될 무렵,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유겐트스틸, 즉 아르누보도 막을 내렸다. 세계대전 이후 현대화된 사회적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는 이후 아르데코와 모더니즘에 의해 지배적인 유럽의 건축 양식과 장식 스타일로 대체되곤 하였다.


비록 자연에서 발견한 원시적인 아름다움에 기능적 공간을 더한 것이지만, 이 양식은 이전까지의 사치스러운 표면 장식을 배제하며 과학 기술적 진보에 영감을 받고 발전해나갔다. 덕분에 역동적이면서 유기적인 디자인이 나타나며 디자인 운동의 새로운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사회가 발전하며 기능만능주의에 익숙해져가던 근대인들이 과도기를 겪을 시점에 나타난 이 운동은 한편으로는 제법 신선한 디자인 운동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비생산적, 비능률적이라도 예술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감성이 우리의 삶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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